렌터카 없이 떠난 부산 1박 2일 운전대 대신 서로의 손을 잡고 걸었던 시간
연애를 하다 보면 여행지에서의 사소한 다툼은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와도 같다. 특히 운전이 그렇다. 꽉 막힌 도로, 낯선 길 찾기, 주차 전쟁을 겪다 보면 예민해지기 마련이고, 운전하는 사람은 풍경을 즐기지 못해 억울해진다. 그래서 이번 부산 여행에서 우리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렌터카를 빌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편안함을 포기한 대신 우리는 서로의 눈을 더 많이 바라보고, 두 손을 꼭 잡고 걷는 뚜벅이 여행의 낭만을 선택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선택은 우리 연애사에서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가 되었다.
KTX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해 지하철 2호선에 몸을 실었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소음조차 여행의 배경음악처럼 들렸다. 해운대역에 내려 숙소에 짐을 풀고 창밖을 보니,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이 우리를 반겼다. 운전하느라 피곤에 쩔어 침대에 쓰러지는 대신, 우리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운대 전통시장으로 향했다.
화려한 오션뷰 레스토랑도 좋지만, 이번엔 시장통의 왁자지껄한 에너지를 느끼고 싶었다. 좁은 골목을 비집고 들어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납작 만두와 달콤한 씨앗호떡을 사 먹었다. 길가에 서서 호호 불어가며 호떡을 나눠 먹는데, 입가에 설탕이 묻었다며 서로 닦아주며 웃음이 터졌다. 차를 타고 맛집 앞까지 이동해서 딱 밥만 먹고 나오는 여행이었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소소하고 따뜻한 즐거움이었다.
배를 채우고는 동백섬 산책로를 걸었다. 바다를 바로 옆에 끼고 걷는 길은 그야말로 힐링이었다. 파도 소리가 도시의 소음을 덮어주었고, 바람에 실려오는 짠 내음이 상쾌했다. 산책의 끝자락, 더베이 101에서 바라본 마천루의 야경은 홍콩이 부럽지 않을 만큼 화려했다. 운전대를 잡고 앞만 보고 달렸다면 휙 지나갔을 풍경들이, 걸으니까 비로소 선명한 색채로 눈에 들어왔다.
저녁의 하이라이트는 미포에서의 조개구이였다. 바다가 보이는 포장마차 분위기의 식당에서 조개를 굽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조개 껍데기 타는 소리와 파도 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둘 다 마음 놓고 술 한 잔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운전해야 하니까 나만 마실게"라는 미안한 말 대신, 우리는 소주잔을 부딪치며 이 밤의 낭만을 온전히 공유했다. 알딸딸한 기분으로 밤바다를 걸으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 잡은 손의 온기가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튿날 아침, 조금 부지런을 떨었다. 버스를 타고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로 향했다. 투명한 유리 바닥 아래로 일렁이는 푸른 바다를 보니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서로 의지하며 걷는 기분이 묘하게 짜릿했다. 청사포의 아기자기한 등대와 반짝이는 아침 햇살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이번 여행의 베스트 컷이 되었다. 삼각대를 놓고 타이머를 맞추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던 그 시간마저도 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나는 추억이다.
점심은 광안리로 넘어가 회를 먹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창밖 구경도 하고, 멍하니 사람 구경도 했다. 밀락회타운에서 싱싱한 횟감을 골라 초장에 푹 찍어 먹으니 입안 가득 바다 향이 퍼졌다. 부산에 왔으니 회는 먹어야지 했던 우리의 단순한 목표가 가장 완벽한 맛으로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여행의 마무리는 역시 커피였다. 광안대교가 정면으로 보이는 카페 2층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낮에 보는 광안대교는 밤과는 또 다른 웅장함이 있었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아무 말 없이 다리와 바다를 바라보았다. 굳이 대화를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침묵. 1박 2일 동안 함께 걷고, 먹고, 웃으며 쌓인 유대감이 우리 사이를 꽉 채우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오는 기차 안, 다리는 조금 뻐근했지만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렌터카가 주는 편리함 대신 우리는 느림의 미학을 얻었고, 내비게이션의 안내 대신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웠다.
만약 연인과 권태를 느끼거나, 혹은 이제 막 시작해 서로를 더 깊이 알고 싶다면 나는 주저 없이 차를 두고 떠나는 부산 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조금 느리면 어떤가. 그만큼 서로를 바라볼 시간이 늘어나는데. 해운대와 광안리의 파도 소리가 우리의 대화에 쉼표를 찍어주던 그 시간들을 아마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다음에도 우리는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다시 이곳을 찾기로 약속했다.